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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도시로 돌아온 창고카테고리 없음 2021. 12. 27. 22:47
18세기 말 영국의 공장
굴뚝으로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는 공장은
5층 정도의 좁은 건물로 보이는데요.
층고가 높고, 면적이 넓은
단일층의 건물에서
여러 제작 공정들이
죽 이어지도록 설계돼 있는
현대의 공장을 떠올리면
조금 낯선 모습입니다.
공장 내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보통 2층과 3층에 공장이 있고,
4층, 5층에는
원자재나 완제품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습니다.
1층에서는 완제품을 판매하기도 했고,
어떤 공장의 꼭대기 층에는
노동자들의 공동 숙소가 있기도 했죠.
왜 산업혁명 초기의 공장은
공장과 창고가 한 건물에 있는,
이런 형태를 띠고 있었을까요?
산업혁명은 철도 개설과 함께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철도와 자동차와 같은 교통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산업혁명 초기에는,
물류비용이 매우 높았습니다.
사람이 직접, 또는
소와 말이 끄는 마차로
운송해야 했기에,
상품을 이동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1810년대에 재화를 육로에서
48킬로미터 이동시키는 비용은,
재화를 배에 실어 3천 킬로미터가 넘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용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공장은
해상 교통수단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항구 근처에 세워지거나,
상품 이동 거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도심에
다른 건물들처럼
여러 층으로 지어졌습니다.
인구 밀도가 높아
주택이 부족했던 도시에서
공장을 짓기 위한 넓은 부지를
구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죠.
그런데 1820년대부터
영국 곳곳에
철도가 개통되기 시작하는데요.
철도와 자동차의 보급으로
운송비용이 점차 저렴해지게 됩니다.
1톤의 재화를
1마일 이동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1890년 18.5센트에서
2001년 2.3센트로 줄어들었는데요.
이제 공장과 물류 창고는
굳이 도시에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도심에 있던 공장과 물류 창고는
땅값이 저렴한 도시 근교,
혹은 더 먼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요.
제조 공장이 가득했던
디트로이트와 뉴욕의 경우,
공장과 물류창고가 모두 떠나자
20세기 중반 공동화되어
도시 운영이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받게 됩니다.
1970년대 석유파동까지 일어나자,
뉴욕시는 재정 압박으로
파산에 직면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한때 제조업으로 번성했던 도시들의
빈 공장과 빈 창고는
오랜 기간 흉물로 방치되었죠.
그런데 최근, 창고가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성수동의 공유 오피스
헤이 그라운드 바로 옆에
쿠팡 집적소가 들어섰는데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땅값이 비싼 서울시 안에
거대한 물류창고가 들어선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거리와 비용만 계산되었던
물류에서 이제는
시간과 품질까지 중요해졌습니다.
기업들은 하루 배송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를 위해
한 시간 배송을
실현하려 하고 있으며,
이제 배송의 ‘품질’까지 고려되기에
소비자와 만나는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의
고품질화를 위해,
물류창고는 소비자와
더 가까운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형태의 MFC,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가
등장하고 있는데요.
MFC는 주문이 접수되면
고객과 가장 근접한 물류창고에서
상품을 픽업해
최단 시간에 전달하는 전략으로,
더 작게, 민첩하게 움직이는
유통의 새로운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MFC를 들여다보면,
1층은 오프라인 매장으로
2층은 온라인 주문에
바로 대응할 수 있는
도심형 물류센터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이 풀필먼트 센터는
단순한 물류창고가 아니라,
상품 입고와 포장, 출하, 배송,
재고 관리에 이르기까지
전 물류과정을
일괄 처리하는 곳입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부진과
도심 봉쇄 조치로 인한
물류 지연 및 중단을 경험한 기업들은
너도나도 보다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MFC를 마련하려 하고 있는데요.
창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최근 런던에서는
옥상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뜨겁다고 하는데요.
드론 택배, 드론 택시가
상용화될 미래에
경제적 가치를 얻으려는 기업들이
드론 이착륙 공간을
선점하려 하고 있는 것이죠.
아마존은 2016년 4월
비행선을 하늘에 띄워
창고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의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습니다.
이 공중물류센터 계획을 접했을 때
많은 이들은 공상과학소설 같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드론 택배가 활성화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19세기 도시 성장을 이끌었으나,
20세기에 도시를 떠났다가,
21세기에 도시로 돌아온 창고.
창고가 하늘 위에 떠 있게 된다면,
도시의 모습은
또 어떻게 바뀌게 될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