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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아폴로 시뮬레이션 감독관, ‘SimSup’카테고리 없음 2021. 12. 26. 13:30
1969년 7월 16일, 그간의 수많은 역경을 딛고 마침내, 아폴로 11호가 유인 달 착륙을 위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11분 49초 만에 지구궤도에 진입했고, 2시간 50분 뒤에는 지구궤도를 떠나 달을 향한 여정에 올랐죠. 나흘이 지난 7월 20일, 이륙 100시간 만에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을 태운 달 착륙선 이글호는 착륙지점 고요의 바다를 향해 하강을 시작합니다.
지구의 관제센터에 있던 진 크랜츠와 이글호의 두 승무원은 바짝 긴장한 채 착륙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매순간 점검했죠. 그런데, 하강엔진을 작동한 지 5분 만에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비행제어 컴퓨터에 돌연 경고등이 들어오며 1202번 에러코드를 발신한 겁니다. 착륙이 실패할 것 같으면 즉시 미션을 중단하고 상승엔진을 점화시켜 모선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착륙 7분을 남겨놓고 Go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하는 긴박한 순간이었죠. 설상가상, 경고음은 이후 몇 분간 거듭됩니다. 착륙 72초를 남겨두고 울린 연료 부족 경고를 포함해, 모두 다섯 번이나 경고음이 울렸는데요. 하지만 이들은 매번 신속하게 Go를 결정했고, 아시는 것처럼 닐 암스트롱은 무사히 이글호를 달에 착륙시킵니다.
이걸 보고 ‘관제팀이 어떻게든 미션을 성공시키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했구나…’ 이렇게 생각하신 분도 계실 텐데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것은 철저한 사전 모의훈련, 즉 시뮬레이션이 빛을 발한 사례였습니다. NASA는 아폴로 이전 머큐리 계획 때부터 시뮬레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시뮬레이션 감독관, ‘SimSup’이라는 직책까지 두었을 정도죠.
SimSup이 이끄는 팀의 목표는 미션의 상세한 부분을 생생하게 경험할 일종의 가상현실을 만드는 겁니다. 우주선과 관제실의 여러 계기판과 모니터에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정보를 띄워, 발생 가능성이 있는 다양한 미래를 미리 체험해보는 거죠. 당연히, 미션이 순탄하게 이뤄질 때는 물론, 돌발적인 비상 상황까지 모두 구현되어야 합니다.
NASA는 제미니-아폴로 미션을 거치면서 우주선 시뮬레이션 기술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나갔는데요. 1960년대 말이 되면 가상의 시뮬레이션과 현실의 미션이 사실상 구분이 안 될 정도가 됩니다. 이들은 여러 비상 상황에 대한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수행하면서 우주비행사들과 함께 경험을 축적해나갔죠. 다양한 비상 상황 시나리오를 만들어 시뮬레이터에 그런 기능을 짜 넣고 테스트하다 보니, 돌발 상황이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 그에 대해 우주선이 어떻게 경고하고 반응하는지 달인들이 되어간 겁니다.
특히 대망의 아폴로 11호 발사를 앞두고선 훨씬 치열하게 시뮬레이션이 이뤄졌습니다. 비행을 석 달 앞두고부터는 하루에 거의 16시간씩 강행군이었고, 발사 6주 전부터는 최종 달 착륙 단계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집중적으로 이뤄집니다. 당시 SimSup이었던 딕 쿠스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비상 상황을 준비해놨는데요. 매 시뮬레이션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우주비행사들은 물론 관제팀에게도 비밀로 했습니다. 예컨대 어느 날에는 갑자기 연료탱크가 새게 하고, 또 다른 날에는 방향전환 로켓 중 하나가 고장 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종료 후에는 그때그때 내린 Go냐 No-Go냐 하는 결정이 옳았는지, 결정에 이르게 된 과정은 적절했는지, 적시에 결정을 내렸는지 리뷰했죠. 그렇게 하나가 넘어갔나 싶으면, 잊을 때쯤 동일한 비상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대처능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도 점검했습니다.
아폴로 11호의 성패를 가른 결정적 시뮬레이션은 발사를 2주도 남겨놓지 않은 7월 5일에 있었습니다. SimSup 딕 쿠스는 달 착륙선이 하강하는 도중 1201번 에러 경고를 띄웁니다. 삑삑거리는 소음을 들은 진 크랜츠는 담당자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물었지만, 스태프들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애매한 대답만 내놨죠. 결국 크랜츠는 미션 취소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뒤이은 리뷰 시간, 쿠스는 크랜츠에게 혹독한 평가를 합니다. “취소할 상황이 아니었다. 당신은 관제의 기본 규정을 위반했다. 취소를 위해서는 두 가지 이상의 이상신호가 있어야 했는데, 하나만 보고 취소시킨 것이다.” 1201번 에러 경고는 일시적으로 메모리가 넘쳐서 발생하는 문제인데요. 다른 비행 상황이 정상적이라면 컴퓨터 리부팅만으로 해결이 가능했습니다. 크랜츠는 순간 당황해 평정심을 잃은 것을 크게 반성하고, 관제팀과 함께 출발 9일 전인 7월 11일까지 ‘미션을 중단해야 할 만큼 치명적인 컴퓨터 에러코드’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실제 이글호 착륙 중 발생한 다섯 차례 경고 알람에도 차분히 대처할 수 있었죠.
여러분. 인류 최초 달 착륙이 ‘순간의 두려움’으로 무산될 수 있었던 위기, 그리고 그 어이없는 실패를 막아준 SimSup 딕 쿠스의 철두철미함, 어떻게 보셨습니까? 많은 기업과 조직들은 그날그날 벌어지는 상황을 해결하기도 벅차기 때문에, 과거에 내린 결정을 냉정하게 리뷰하거나, 조직에 닥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보신 것처럼, 이런 작업은 허투루 넘길 일이 전혀 아니죠. 오늘은 여러분이 몸담고 계신 조직에, 아폴로의 SimSup 역할을 할 사람이 있는지 꼭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