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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 아시가바트
    카테고리 없음 2021. 12. 23. 21:31

    2021년 6월 글로벌 컨설팅 기업 Mercer가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외국인 근로자에게 가장 비싼 도시로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시가바트가 선정되었습니다. 아시바가트는 홍콩, 베이루트, 도쿄 등을 제치고 주거비, 교통비, 식품비 등이 가장 많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1인당 소득이 9,030달러로 세계 73위에 불과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가 왜 이렇게 생활비가 많이 드는 걸까요?

     

    Mercer 관계자는 고비용 도시 top 10에 드는 대부분의 도시들은 경제성장에 의한 부동산가격 상승이 비용 상승의 주원인이지만, 아시가바트는 오히려 반대로 경제위기가 그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세계 4위의 천연가스 매장국인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제는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데요. 수출의 81.4%가 천연가스입니다. GDP 대비 천연자원 지대(Rent) 비중이 17%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고 중진국 평균(5%)보다 훨씬 높은 수준인데요. 21세기 들어서 투르크메니스탄의 고도성장은 바로 천연가스 덕분이지요. 그러나 이 천연가스가 오히려 경제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클리앙

     

    우선 국제 천연가스 가격의 장기 하락세입니다. 2014년 2월 MMBtu당 6달러를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하여 2020년 7월 1달러대까지 추락한 후 다소 회복세를 보였으나 2021년 7월 현재에도 3달러대에 불과하지요. 게다가 2014년까지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의 1/4을 수입해왔던 러시아가 2016년부터는 수입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의 수입이 중단된 이후 투르크메니스탄 가스 수출량의 90% 이상이 중국으로 갔는데요. 가파르게 수입을 늘리던 중국마저 2018년 최고치(345억 제곱미터)를 찍은 후 점차 줄여가다 2020년 3월에는 팬데믹을 이유로 일시적인 수입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지요.

     

    이러한 복합적인 악재로 인해 2014년까지 10%대에 이르던 고성장세는 2015년 이후 6%대로 하락했고, 2020년에는 팬데믹의 영향으로 5%대로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크게 떨어지긴 했지만, 5~6%대 성장률은 경제 위기라고 부르기에는 꽤 높은 수치인데요. 상대적 성장률 하락이 경제위기로 이어지게 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권위주의적인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의 경직된 환율 정책입니다. 성장률 하락으로 달러화의 유입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투르크메니스탄 자국 화폐인 마나트화는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데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공식환율을 2015년 마나트화를 달러당 3.5로 한 차례 절하한 이후 6년째 이 수치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공식환율과 시장환율 간에 엄청난 괴리가 발생했는데요. 2021년 4월 암시장에서 1달러는 40마나트에 거래되어 무려 그 괴리가 11배 가까이 된 것이지요.

     

    이로 인해 달러를 만질 수 있는 극소수 부유층이나 엘리트층은 엄청난 수혜를 보지만, 달러를 직접 만지기 힘든 일반 기업과 서민들, 특히 성장률 하락으로 일자리를 잃은 빈민층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기업의 수출대금도, 터키로 외화벌이를 떠난 가족이 보낸 송금도 모두 공식환율 기준으로 환산된 마나트로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실제 소득은 1/10로 줄어들었는데요.

     

    국민들의 피해는 가스 외에 대부분의 생필품이 수입되기 때문에 몇 배로 더 커집니다. 특히 자급률이 40% 정도에 불과한 식품은 수입의 거의 80%를 이란에 의지하고 있는데요. 2014년 이후 몇 차례의 흉작, 그리고 국경 폐쇄 등으로 수입량은 줄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아시가바트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가 된 것이지요.

     

    아시가바트의 돈 있는 사람들은 암시장에서 비싼 생필품을 구입합니다. 하지만 서민들은 국가 보조금으로 싸게 파는 국영 식료품점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요. 그마저 높은 공급가격과 물량부족으로 부족한 형편이죠. 따라서 곳곳에서 마치 1990년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처럼 국영 식료품 가게 앞에 긴 줄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021년 4월 13일 남쪽의 한 도시에서는 2kg의 냉동육을 받기 위해서 1,000여명의 사람들이 몇 시간이나 줄을 서기도 했지요.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는 것은 정부의 안일한 대응인데요. 국제 기구와 NGO들이 앞다투어 투르크메니스탄의 식량위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당사국 정부는 철저히 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식품을 구하기 위한 줄이 길어지자, 2021년 4월에는 5명 이상 줄을 설 경우 체포하겠다는 정부령이 내려졌는데요. 이 명령을 내린 사람은 현 대통령의 아들로 그 근거가 ‘대통령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63세의 대통령은 39세의 아들을 부총리로 임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 종신 임기제와 세습제를 위한 개헌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은 지방 정부 수장들과의 화상회의에서 식량위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정부 찬양을 위한 콘서트 준비 지시만 내려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고 하지요. 기초적인 생존의 문제가 흔들리자,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통제사회인 투르크메니스탄에서도 시위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워싱턴 주재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는데요. 향후 투르크메니스탄의 정국이 매우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죠.

     

    투르크메니스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일한 대책은 가스 수출의 다변화와 에너지 산업의 고도화를 더욱 가속화하여 달러 수입을 빠른 시일 내에 늘리는 것인데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때문에 현대엔지니어링, GS건설, 한국철도공사 등 한국 기업의 활약이 이들에게 더욱 절실한 상황입니다. 우리 기업들의 진출이 늘어날수록 정세 불안 등 투자 환경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도 강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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