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인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카테고리 없음 2022. 3. 20. 23:08
K-POP이나 드라마가 중국에서 인기몰이를 했던 때였습니다. 제가 운영했던 중국어 뉴스 사이트에 이런 제목의 기사를 올렸습니다. “아무개 그룹 대륙을 점령하다” “중국, 우리는 왜 이런 드라마 못 만드나 한탄”. 저도 뭐, 한국인이니까 당연히 뿌듯한 마음으로 올렸죠. 그런데 기사 밑에 달린 중국인들의 댓글 분위기는 시쳇말로 싸-했습니다. 이런 말들이 많더군요. “한국인은 정말 예랑쯔다야. “ 예랑쯔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기원전 2000년 전, 중국 대륙의 서남쪽 지방에 야랑국(예랑궈)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한나라의 사신이 예랑 궈를 방문했는데, 이 왕이 기고만장한 얼굴로 사신에게 “한나라와 우리나라, 어디가 더 큰가?”라고 묻더랍니다. 당연히 한나라보다 우리 예랑 궈가 훨씬 클 걸? 이런 생각으로 물어보았겠죠. 하지만 한나라 사신 입장에서 보면 정말 어이없는 질문이죠. 중원을 평정한 통일 제국이었던 한나라에 비하면 예랑 궈는 그냥 변방 동네에 불과했기 때문인데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야랑자대, 중국어로 ‘예랑쯔다’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습니다. 예랑쯔다는 예랑이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긴다, 즉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인 줄로 아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인데요. 중국인들은 한국 특유의 잘난 척에 이 예랑쯔다란 말을 잘 사용합니다. 예랑처럼 작은 나라인 한국이 중국에 우월의식을 내비칠 때 어김없이 쓰는 말이죠. 물론, 기분이나쁠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중국이 없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중국에 어느 정도 우월감을 갖고 있는 것, 솔직히 부인하기 힘들지 않나요? 이런 생각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과 중국, 각자의 피해의식과 우월의식이 역사적으로 뒤섞여 있다는 겁니다. 중국은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죠. 문화적 자긍심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들 눈에 한민족은 변방 오랑캐에 불과합니다. 중화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인 존재일 뿐이지요. 반면, 우리는 역대 중국 왕조로부터 자유로울 때가 거의 없었습니다. 위협을 받거나, 때로는 조공을 바치면서 공존해야 했습니다. 강대국 눈치를 늘 봐야 했던 약소국의 피해의식이 왜 없겠습니까. 이런 수 천년의 역할에서 일대 반전이 일어난 건 1980년대부터입니다. 우리가 고속 경제 성장을 이루던 시기, 중국은 문화 대혁명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끝내고 경제성장을 위해 막 걸음마를 떼려고 한 때였습니다.
이때 우리가 경제적으로 처음 중국에 앞섰습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시기 금욕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능도 억눌리고 산 데다, 경제성장에 온 정신을 집중하느라 멋을 추구하는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요. 비주얼을 중요시하는 우리 민족의 특성상 이런 중국이 마냥 촌스러워 보입니다. 특히 이 시기에 인생의 전성기를 보낸 한국인들에게 중국은 우리가 한 수 가르쳐 주어야 하는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호시절은 약 30년 만에 끝났습니다. 경제적 성공을 거둔 중국이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죠. 하지만 가장 최근의 역사는 잔상이 길게 남는 법이지요. 우리가 ‘이런 쪽은 중국보다 앞서지’라는 식의 우월의식을 내비칠 때마다, 이제 중국인은 때가 어느 때인데. 쯧쯧하면서 ‘한국인은 정말 예랑쯔다야’라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중국 온라인 백과사전에는 ‘한민족 우월주의’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입니다.
두 번째는 미디어의 영향입니다. 미디어에서 중국을 낮춰보는 시각은 부지기수입니다. 배우A씨가 중국 도시에서 현지 촬영을 하는데, 중국인 모습과 똑같이 분장을 해서 현지인 속에 들어간 이 배우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고 하는 내용의 기사가 연예 매체를 도배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조선족으로 변신한 주인공은 분명 누가 봐도 투박하고 촌스러운 스타일이었죠.
왕서방이 입맛이 고급화되더니 크루아상, 소고기까지 다 먹어 치운다.. 대륙의 포식 어디까지? 이런 제목들도 수두룩합니다. 돈 좀 생기니 고급 음식을 먹어 치우는 게걸스러운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주지요. 문제는 이런 선정적인 보도자료나 통신사의 기사 소스를 다수의 매체가 똑같이 사용하다 보니 하나의 이미지가 확대 재생산되어 머릿속에 각인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K-POP 가수가 있는데, 중국은 없지?” 이런 식의 시선이나 “아무개 드라마, 혹은 가수가 대륙을 평정했다” 같은 표현도 걸러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제작사에서 해당 작품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을 좀 오버해서 보도자료용으로 미디어에 뿌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보도자료를 각 미디어에서 그대로 인용하다 보니 마치 온 중국이 우리 작품에, 가수에 푹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되죠. 하지만 중국인들은 다릅니다. ‘걸핏하면 중국을 휩쓴다고 하네? 정말 자신들이 대단한 줄 아나 봐.’ 이런 반응을 보이죠. 물론 중국 내 한류팬이 많습니다. 하지만 중국에는 다양한 문화 향유층이 있습니다. 한류는 그 문화 향유층의 일부분으로, 수많은 문화 팬덤 중의 하나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따라서 중국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할 경우에는 팩트만 전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IT제품, 패션에서 일상용품까지 중국의 전통문화를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녹여낸 제품들이 대거 쏟아지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도 중국 영화, 드라마 팬층이 두터울 정도로 영상물의 완성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2000년대부터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고 자라온 밀레니얼 세대는 확실히 기성세대와는 다른 눈으로 중국을 봅니다. 출강을 나갔던 대학교의 수업 첫날, 저는 학생들에게 ‘중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하나씩 얘기해 보라고 했었는데요. 촌스러움, 불결함, 짝퉁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이게 왠걸요. 제 생각과는 정반대로 부자, 경제대국, 전통문화 같은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를 통해 세대별로 중국에 대한 인식 차이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앞서 나갔던 30년의 짧은 기억만을 가지고 중국을 대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