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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제2의 우크라이나 전쟁 우려카테고리 없음 2022. 3. 15. 23:54
벨라루스 정치적 혼란 상황
8월 12일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의 한 거리에 73세의 할머니가 자기 키만 한 깃발을 들고 무장경찰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묻는 경찰에게 할머니는 당당한 목소리로 “야 굴려요!”, 나 산책하고 있어라고 외쳤는데요. 순간 당황한 거구들 사이를 헤집고 할머니는 깃발을 더 높이 들고 제 갈 길을 갑니다. 외신기자에 의해 찍힌 이 동영상은 순식간에 수만 명이 공유하며 퍼져나갔고 유럽 전역에서 언론 인터뷰가 쇄도했습니다. 일약 벨라루스 민주화의 상징으로 부상한 이 할머니의 이름은 니나 바긴 스카야인데요. 1994년 현 대통령인 루카센코가 처음으로 집권했을 때 벨라루스 언어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전직 지질학 교수입니다. 그 이후 수십 차례에 걸친 체포와 구금도 그녀의 민주화 열망을 꺾진 못했는데요. 특히 올해 8월 9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루카센코가 당선된 이후 거의 2달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시위에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현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센코는 80.1%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6번째 연임에 성공했는데요. 1994년 당선 이후 무려 26년에 걸쳐 이어진 임기가 이번에 다시 5년 더 연장된 것입니다. 벨라루스 야권과 서구에서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루카센코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도 온갖 부정행위로 당선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U의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번 벨라루스 대선은 자유롭지도 않았고 공정하지도 않았다”라고 했고, 독일 의회도 “정당한 선거가 아니었다”라고 성토했지요. 친정부 기관의 출구조사와는 달리 독립 기관의 출구조사에서 야권 후보였던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가 적어도 재외투표소에서는 81.5%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도 부정선거의 의혹을 더 심화시켰습니다. 대선 이후 지금까지 거의 두 달째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가 수도 민스크를 비롯한 벨라루스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사전 선거운동부터 사후 선거 무효 운동까지 이번 벨라루스의 대선 정국을 주도하는 것이 여성들이라는 점입니다. 루카센코에 이어 10.1%의 지지율로 2위를 차지한 티하놉스카야가 여성이며 그녀와 함께 삼인방을 이루며 대선 불복 시위를 이끌 있는 마리야 콜레스 니코 바, 베로니카 체 프칼로도 모두 여성입니다.
여기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도 동참하고 있고 니나 바긴 스카야는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분이시지요. 그런데 여성들이 나서게 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루카센코 때문입니다. 그는 대선 전에 자신의 경쟁 후보들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데요. 이번 선거에서도 유명 블로거인 세르게이 티하놉스키, 금융 재벌 빅토르 바바리 코, 벨라루스판 실리콘밸리의 창설자 발레리 체 프칼로 등이 모두 사회 질서 교란, 돈세탁과 탈세, 대선 인명부 위조 등의 명목으로 중도 탈락하거나 투옥되었습니다. 그러자 전문 정치가가 아닌 그들의 여자들이 나선 것인데요. 세르게이 티하놉스키의 아내인 스베틀라나는 통역사, 발레리 체프칼로의 아내인 베로니카는 작가이자 IT기업인, 빅토르 바바리 코의 캠프 참모인 마리아 콜레스 니코 바는 플루트 연주자입니다. 이들은 남자들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정치 일선으로 나섰고 여성 특유의 포용력과 강인함으로 남자들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지요.
여성들이 일으킨 정국의 반전
우선 세 명의 남자 후보들이 사라진 후 세 명의 여인이 즉각 회동하여 그 어려운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는데요. 선거에서 이길 경우 복귀한 남자후보들이 참가하는 재선거를 반드시 열어 정정당당하게 경쟁한다는 조건이었지요. 또한 수많은 남성 시위자들이 폭력에 끌려가자 여성으로만 구성된 시위대를 만들어 뜨개질 시위 등 갖가지 창의적인 방법으로 세계 여론의 지지를 얻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각종 SNS 도구까지 가세해 벨라루스의 대선 정국은 새로운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는데요. 여성들이 일으킨 정국의 반전이 향후 벨라루스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까요? 많은 사람들이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사실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두 나라 모두 9세기에 형성된 ‘루스’에서 비롯된 형제국이고, 언어도 닮았으며, 러시아에 대한 애증의 모순된 감정이 깊고 따라서 내부에서 친러시아파와 반러 시아파 간의 갈등이 상존하고 있는데요.
친러시아파와 반러 시아파 간의 갈등
그러나 둘의 공통점은 여기까지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친유럽계와 친러시아계가 지역적으로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고 러시아어보다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더 많지요. 반면 벨라루스는 지역적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은 데다가 수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친 러시아적입니다. 게다가 국민 대다수가 벨라루스 어보다 러시아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요. 전 국민의 80%, 수도 민스크는 94%가 러시아어를 쓰지요. 시위를 주동하고 있는 모든 인텔리들도 러시아어를 사용합니다. 니나 바긴 스카야가 외친 ‘야 굴려요’도 러시아어지요. 노벨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의 작품도 러시아어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루카센코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처럼 국론이 양분되고 내전으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가장 머리가 아픈 것은 그동안 루카센코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온 푸틴의 입장이겠지요. 루카센코 편을 계속 들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경우 낭패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어쩌면 벨라루스 정국을 이끌고 있는 여성들의 포용력을 잘 살린다면 벨라루스에게도 러시아에게도 심지어 서방에게도 모두 행복한 결말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모두 같이 ‘야 굴려요’를 웃으며 외치는 결말을 기대해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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