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영화 디아볼릭 리뷰(존재하지 않는 여자)
    카테고리 없음 2022. 3. 13. 12:26

    예전 어른들은 티비를 바보 상자라고 했죠. 티비를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바보가 된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인데, 사 실 이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란 걸 여러분도 아마 느끼실 겁니다. 모든 영상에는 의도와 목적이 있고, 그것들을 시청자들에게 관철시키기 위해 영상안에서 온갖 노력을 다 하는데요. 정보를 전달해서 그 정보를 알게 하는 것, 어떤 주장을 펼쳐서 그 주장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 누군가의 감정을 조정하는 것, 웃기는 것, 혐오스러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 등등. 영상안에선 이런 모든 목적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 양한 것들이 펼쳐집니다. 저는 이것을 ‘설득’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티비가 바보상자라는 얘기는 아마 이런 관 점에서 넋놓고 있으면 온 정신과 마음을 다 빼앗긴다는 의미이기도 하겠고요. 그럼 이 시점에서 우린 한가지 궁금한게 생깁니다. 영상이 가진 설득의 힘, 정말 얼마나 힘이 있는 걸까요. 오늘 영화 한 편과 함께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소설 ‘존재하지 않는 여자’와 1995년에 제작된 동명의 영화를 기반으로 리메이크된 영화 ‘디아볼릭’은 1990년대 당시 최고의 섹스심볼이었던 샤론스톤과 이자벨 아자니가 함께 출연해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였습니다. 이 이 야기를 잠깐 해보죠. 이들은 니콜과 미아라는 이름으로 영화에 등장하는데, 이 두사람 사이에는 가이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이 관계가 좀 복잡한데요. 미아와 가이는 부부관계, 그리고 니콜과 가이는 불륜관계입니다. 그리고 이 셋 은 한 학교에서 교장과 교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가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니콜과 미아는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됩니다. 가이의 폭압은 계속 심해져 가고 마침내 이들은 이 상황을 끝낼 계획 하나를 생각 해 내는데, 바로 가이를 살해하는 것입니다.

     

     

    약을 탄 술을 가이에게 먹여 기절시킨 뒤에, 대기중이던 니콜이 합류해서 가이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이때부터 이 두 사람의 기나긴 사투가 시작되는데요. 연약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 두 여자들이 육중한 가이의 몸을 붙잡고 물 이 가득담긴 욕조로 옮깁니다. 아마도 익사를 계획했나보군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욕조 안에 담가 졌던 가이가 그만 께어나고 말았습니다.

     

     

    욕조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 치는 가이와 그를 물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안 간힘을 쓰는 두 사람의 한바탕 몸싸움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약기운에 힘이 빠진 탓인지 가이는 그곳을 끝내 빠져나오지 못한 채 욕조안에서 숨을 거둡니다. 이미 익사한 상태이지만 밤새 그의 몸에 무거운 정수통이 올려져 있는 건 이 두 여인이 얼마나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날 시신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길을 나서는데,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그들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 안 외딴 수영장이었습니다. 이곳에 가이의 시신을 유기하려는 모양인데 아주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아서인지 구정물투성이에 악취가 진동하는, 그들 입장에선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겠네요. 그렇게 가이의 시신을 어렵게 끌어내려 수영장으로 던지려는 순간,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니콜이 차고 있던 선글라스가 가이와 함께 딸려서 수영장에 빠져버린거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도록 니콜과 미아의 관심은 온통 그 수영장으로 쏠려 있었습니다. 시신이 떠오르면 가이가 술에 취해 그곳에 빠져 익사했다는 스토리를 완성하려고 하는듯 보이는데요. 학생들이 주변에서 서성거거나 관리인 이 무언가를 발견한듯한 모습에 이 두 사람이 모든 신경이 집중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이 지나도록 가이의 시 신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수영장의 물을 빼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수영장의 물이 다 빠지고 난 후, 미아는 그 자리에서 그만 실신을 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가이의 시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인정받지는 못했던 이 ‘디아볼릭’이라는 영화를 제가 오늘 소개해드린 이유는 이 영화가 우리를 끝없이 설득하여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조정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아주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상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 때 시청자들은 그 영상 안에서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할까요?

     

     

    네, 바 로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영화 안에서 주인공은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시청자들이 그들 에게 감정을 맡길 수 있도록 안심을 시켜주는 거죠.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더욱 노골적입니다. 이자벨 아자니, 샤론스톤 등 우리가 마음을 맡길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포진시켰고요, 그 반대편에선 주인공을 괴롭히는 폭력남, 가이를 두었죠. 따라서 가이의 폭력성은 이 두 여성에 대한 폭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청자들 에게 대한 폭력이기도 합니다.

     

     

    두 여자 주인공이 가이를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시청자들의 몸도 달아오릅니다. 가이가 욕조에서 깨어났을 때, 아마 수많은 시청자들은 ‘당장 그놈의 얼굴을 물속으로 쳐넣으라고!’ 라고 마음 속으로 외쳤을 겁니다. 니콜의 선글라스 가 수영장에 빠졌을 때, 시청자들은 심장이 멎는 당혹감을 느꼈겠죠. 학생들과 관리인들이 수영장 주변을 어슬렁거 릴 때도 우리 역시도 함께 신경이 쓰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가이의 시신이 수영장에서 사라졌을 때는? 당혹감에 마음이 하얗게 된 시청자들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보죠. 엄밀히 말하면 미아와 니콜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살인뿐 아니라 시신을 유기하고 은닉했고, 그 과정에서 주변인을 기만했죠. 살인중에서도 아주 죄질이 나쁜 살인자들입니다. 물론 미아와 니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닌 데,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살인의 현장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이 그 살인자의 입장에서 감정이입하고 있다는 건 매우 이상한 일이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 영상이 가지는 무서운 힘에 대해 실감하게 됩니다.

     

     

    믿을만한 대중적 이미지와 신뢰감을 갖고 있는 이 주인공이 살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관객들에게 살인은 어쩔 수 없어 라고 생각하도록 심리적인 무 장해제를 이끌어내는, 살인과정에서 오히려 살인자들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하고,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 태도를 굳 게 유지시킨채 영화관을 나오게 하는 그 힘 말이죠. 이게 시청자들의 인생을 바꾸는 엄청난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 다 하더라도 단 몇시간 동안 그들의 태도와 관점이 순식간에 바뀌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이 일련의 과정 이 어떤 면에서는 매우 공포스럽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거의 대부분의 영상들이 이런 구조를 가지고 우리를 찾아옵니 다. 그 영상들에는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합니다. 다양한 목적들도 존재하고요. 우리가 이렇게 잘 짜여진 구조속에 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무방비로 열어둔다면 오늘 우리가 열어보는 유튜브는, 여러분의 스마트폰은 또다시 우리 를 놀려먹는 바보상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