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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르기스스탄
    카테고리 없음 2022. 3. 1. 11:04

    튤립의 나라 키르기스스탄

    '튤립의 나라'하면 네덜란드가 떠오르시겠지만, 사실 튤립의 중심지는 16세기까지는 이란, 터키, 그리고 무엇보다 중앙아시아였습니다. 특히 22개 종의 튤립이 자라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튤립의 나라’가 바로 오늘 포스팅할 키르기스스탄인데요. 이 나라에서 튤립은 산업이 아니라 자연과 민족 혼의 일부로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나라꽃’이지요.

     

    키르기스스탄의 민주화 운동, 튤립 혁명

    키르기스스탄에서는 2005년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인 튤립 혁명이 있었습니다. 이 민주화 운동은 소련 해체 이후 예외 없이 1인 장기 집권의 권위주의가 횡행한 중앙아시아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는데요.

     

    사진출처 연합뉴스

     

    가장 넓은 영토를 자랑하는 카자흐스탄에서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29년, 가장 인구가 많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카리모프 대통령이 27년, 가장 폐쇄적인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니야조프 대통령이 16년, 가장 작은 타지키스탄의 라흐몬 대통령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30년 간 집권했습니다. 그러나 키르기스스탄은 그 출발부터 달랐습니다.

     

    사진출처 뉴스더원

     

    산악 유목 국가인 키르기스스탄은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번번한 자원도, 내세울만한 산업도, 넉넉한 인구도, 주변국의 침략을 막을 군사력도 없었는데요. 소련 붕괴 후 독립한 키르기스스탄의 초대 대통령인 물리학자 아카예프는 해외 자본 유입을 위한 자국책으로 서구 모델에 기반한 민주주의와 개방 경제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진출처 뉴스더원

     

    그 결과 중앙아시아의 ‘민주주의의 섬’이라는 별칭도 얻었지요. 1998년에는 러시아를 포함한 CIS 국가들 중 처음으로 WTO 가입에도 성공했는데요. 토지개혁과 국영기업의 민영화, 해외 자본에 의한 금광 개발 등으로 경제도 7% 이상의 성장을 이루었지요.

     

    사진출처 뉴스더원

     

    키르기스스탄의 민주화 길

    그러나 민주화로 가는 키르기스스탄의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아카예프 대통령이 장기 집권과 부정부패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이지요. 이 때문에 핵심 지지층의 이탈과 지배 엘리트 내의 분열이 가속화되었고 반대세력과 언론에 대한 탄압은 갈수록 심화되었는데요. 2005년 총선에서 민주화 열망이 온갖 부정행위로 물거품이 되자 마침내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이는 전국적인 시위로 확산되었습니다. 결국 아카예프 대통령이 실각하고 같은 해 이루어진 선거에서 바키예프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요.

     

    사진출처 뉴스더원

     

    중앙아시아에서 육체적 사망이 아니라 정치적 절차에 따른 정권 교체가 처음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튤립혁명으로 집권한 바키예프 대통령은 2년 뒤 국민적 지지 하에 더욱 진일보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개헌에 성공하는데요. 그 개혁 수준이 다른 이슬람국가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정당명부제, 즉 비례대표제로 국회를 구성하되 이 정당 명부에 등재된 후보자 중 남녀 어느 한쪽의 비중이 70%를 넘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요.

     

    사진출처 YTN

     

    여기에 35세 이하의 비중도, 소수민족의 비중도 모두 15%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까지 추가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해피엔딩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남부 출신인 바키예프 대통령의 여섯 형제와 두 아들 등 친인척이 핵심 요직과 국가 자산을 독차지하기 시작한 건데요. 2007년 12월 총선, 2009년 7월 대선에서 바키예프가 모두 승리했지만 키르기스스탄 국민들도 OSCE 등 해외의 중립 기관들도 인정할 수 없는 부정선거였습니다. 2010년 봄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전국에서 다시 시작되었고 특히 북부 탈라스 시의 시위는 폭력사태에까지 이르렀지요. 그 해 4월 바키예프는 남부의 고향으로 피신한 후 대통령직에 사임했습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같은 해 6월 실시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한 의원내각제가 90.56%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됩니다. 놀라운 것은 5년 임기 12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국회에 어느 1개 정당도 과반 65석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는 파격적인 법안까지 통과되었다는 것이지요. 7월 과도 대통령 취임, 10월 총선을 거쳐 12월 연합정부와 내각이 출범하고 1년 뒤에는 대통령 선거에 의해 아탐바예프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키르기스스탄 최초로 혁명 없는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건데요.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마침내 민주주의가 안착되었습니다. 심지어 2019년에는 전직 대통령인 아탐바예프가 부정부패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는데요. 성역이 없는 법치주의가 힘을 발휘한 것이지요.

     

    사진출처 연합뉴스

     

    한국 정부와 기업의 진출

    이제 키르기스스탄에게는 잦은 정치적 소요로 위축된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GDP 8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280달러에 불과한 빈곤국에서 탈출하기 위해 튤립 혁명이 아닌 튤립 혁신이 필요한 때인데요. 이 경제 발전에도 한국이 기여할 여건이 성숙하고 있습니다.

     

     

    2015년 한국수자원공사가 발전 인프라 개선을 위한 MOU를 체결했고, 2017년 한국 조폐공사가 전자주민카드를 수출했으며 2019년 한국 총리 최초로 이곳을 방문한 이낙연 총리는 4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사업에 우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WTO 회원국일 뿐만 아니라 약 2억 명 시장이 무관세로 통합된 유라시아경제연합의 회원인 키르기스스탄은 그 작은 경제규모에 비해 무궁무진한 활용 가치가 있는 국가입니다. 튤립의 나라, 키르기스스탄의 혁신에 한국 정부와 기업의 진출이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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