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관대첩비의 귀환 #2] 끈질긴 반환 요청과 귀환카테고리 없음 2022. 2. 27. 23:22
드러난 북관대첩비의 존재
일본에 넘어간 북관대첩비를 발견하고 울분을 토로한 조소앙 선생의 글을 1978년, 재일학자 최서면이 확인하고 이를 다시 언론에 알리기 시작했는데요. 북관대첩비의 존재와 반환에 대한 여론이 일자 정문부의 후손인 해주 정 씨 문중이 나서서 한일친선협회를 통해 야스쿠니 신사에 북관대첩비의 반환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1979년에는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공식 요청하였고, 1991년에는 한국의 다양한 단체에서 북관대첩비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죠. 그러나 일본 정부는 ‘북관대첩비의 원소재지가 북한인 데다 신사가 보유한 물건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반려했습니다. 야스쿠니신사는 ‘남북통일이 되면 돌려주겠다’ 고도했지요. 이런 핑계는 북관대첩비를 돌려주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끈질긴 반환을 위한 노력
끈질긴 반환 요청에도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는 꿈적하지 않았습니다만, 일본 내에도 북관대첩비가 반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본 서예가 요코 세이자부로는 북관대첩비를 탁본 하면서 “비석이 진동하며 우는 것을 느꼈다. 하루빨리 한국으로 옮겨야 한다”라고 했죠. 일본 승려 가키누마 센 신은 일본 측 불교계 대표로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었는데, 이 북관대첩비 탁본을 한국 측 대표인 초산 스님에게 건네기도 했습니다. 한일 두 나라의 승려가 힘을 합해 반환을 요청했지만, 야스쿠니신사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민족혼이 담긴 북관대첩비를 찾자는 데 남북이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것도 없었습니다. 북한의 길주에 있던 비석이니 남북이 합의하여 요청하면 ‘남북통일이 되면 돌려주겠다’는 야스쿠니신사도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될 테니까요.
마침내 2005년 3월 28일, 드디어 남북한의 불교계 대표가 중국 베이징에서 만났습니다. 공동으로 북관대첩비 반환을 요청하고, 반환을 받은 뒤에는 함경도 길주 땅에 보내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2005년 6월 20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북관대첩비 반환에 대해 합의했고, 10월 12일에는 대한민국과 일본 정부가 북관대첩비 인도문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리고 여드레가 지난 2005년 10월 20일, 마침내 북관대첩비는 비행기에 실려 일본을 떠나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1905년 북관대첩비가 제자리를 떠난 지 무려 100년, 1978년에 북관대첩비 반환 운동을 시작한 지 27년 만에 이룬 값진 결실이었습니다. 이후 북관대첩비는 정밀한 보존 처리 작업을 마치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경복궁 경내에 전시되었다가 2006년 3월 1일 북한으로 보내졌는데요. 이후 북관대첩비가 본래 서 있었던 그 자리, 함경도 옛 길주 땅인 김책시 임명동에 세워졌고, 북한은 북관대첩비를 국보유적 제193호로 지정했습니다. 문화재는 온전히 제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나는 법이지요. 우리도 언젠가 함경도 길주에 직접 가서 북관대첩비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해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